2025년 8월 12일 화요일

한국형 소버린 AI의 시작, 국가 대표 AI 기업 5곳 선정의 의미와 전망

정부가 20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국가 AI 파운데이션 사업의 최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네이버, LG AI 연구원, NC,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등 5개 팀이 한국의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국가 대표 기업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업 선정을 넘어서 한국이 AI 주권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치열했던 선정 과정과 결과

이번 선정 과정은 상당히 치열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공모에서 15개 팀이 1차로 선정되었고, 이후 10개 팀으로 압축된 뒤 최종 5개 팀이 선정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존 IT 대기업인 카카오와 KT가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단순히 기업 규모나 인지도가 아닌, 실제 AI 기술력과 발전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선정된 5개 팀은 모두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는 서울대, 포항공대, KAIST 등 주요 대학들과 손을 잡았고, SK텔레콤은 크래프톤, 리벨리온 등 산업계와 학계를 아우르는 팀을 구성했다. LG AI 연구원은 LG유플러스, LG CNS와 함께 퓨처사이AI, 업튼테크놀로지 같은 AI 스타트업들과 협력체계를 만들었다.

  • 네이버클라우드 팀

    • 네이버, 트웰브랩스

    • 대학: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KAIST, 포항공대 산학협력단, 고려대 산학협력단, 한양대 산학협력단

  • 업스테이지 팀

    • 노타, 래블업, 플리토, 뷰노, 마키나락스, 로앤컴퍼니, 오케스트로, 데이원컴퍼니, 올거나이즈코리아, 금융결제원

    • 대학: 서강대 산학협력단, KAIST

  • SK텔레콤 팀

    • 크래프톤, 포티투닷, 리벨리온, 라이너, 셀렉트스타

    • 대학: 서울대 산학협력단, KAIST

  • NC AI 팀

    •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 기업: 에이아이웍스, 포스코DX, 롯데이노베이트, HL로보틱스, 인터엑스, 미디어젠, MBC, NHN 

  • LG경영개발원 AI연구원 팀

    • LG유플러스, LG CNS, 슈퍼브AI, 퓨리오사AI, 프렌들리AI, 이스트소프트, 이스트에이드, 한글과컴퓨터, 뤼튼테크놀로지스

파격적인 지원 규모와 내용

정부의 지원 규모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가장 핵심적인 지원은 GPU 제공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기업당 500~1000개씩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6월까지는 SK텔레콤과 네이버가 보유한 GPU를 다른 팀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정부가 새로 구매할 GPU를 5개 팀 모두에게 제공한다.

데이터 지원도 상당하다. 국가기록원, 통계청, 특허청 등 정부 기관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팀별로 AI 데이터셋 구축을 위해 28억 원씩 지원한다. 여기에 200억 원 규모의 방송 영상 데이터까지 추가로 제공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스테이지에는 해외 인재 확보를 위한 인건비와 연구비를 별도로 지원하기로 했다.

각 팀의 차별화된 전략

흥미로운 점은 5개 팀이 모두 같은 AI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전략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LG AI 연구원은 가장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오픈AI나 중국의 딥시크와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AI 모델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미 자체 개발한 LLM인 EXAONE이 전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국내 AI 생태계 전체를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네이버와 SK텔레콤은 자신들의 플랫폼 장점을 활용한 전국민 AI 접근성 향상에 집중한다. 네이버는 오디오, 비디오 등 멀티모달 AI 서비스 구축과 함께 누구나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을 제공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전 연령대 고객을 보유한 통신사의 특성을 살려 디지털 취약계층을 포함한 맞춤형 AI 서비스 제공에 나선다.

NC는 AI 산업 생태계를 위한 플랫폼 구축에, 업스테이지는 의료, 금융, 법률 등 특정 분야의 전문 AI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소버린 AI의 필요성과 과제

이번 사업이 '소버린 AI'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AI 시장은 미국의 오픈AI, 구글, 중국의 바이두 등 소수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AI 서비스에 의존할 경우, 데이터 주권 문제는 물론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어 처리 능력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면에서 해외 AI 모델들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AI 모델 대비 95% 이상의 성능을 목표로 설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GPU 확보 문제가 있다. 현재 엔비디아 GPU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 상태이고, 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인한 수출 규제 리스크도 존재한다. 또한 AI 개발에 필요한 고급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AI 경쟁에서의 한국의 위치

현재 글로벌 AI 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는 솔직히 말해 후발주자다. 미국은 오픈AI의 GPT 시리즈로, 중국은 바이두의 어니봇과 딥시크의 모델들로 이미 상당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유럽도 미스트랄AI 같은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도 나름의 강점이 있다.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메모리 기술력, 네이버, 카카오 등의 플랫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빠른 인터넷 인프라와 높은 디지털 활용도를 가진 사용자층이 그것이다.

향후 전망과 기대효과

이번 국가 AI 파운데이션 사업이 성공한다면 여러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AI 기술 주권 확보를 통해 해외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특화된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또한 AI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향상으로 관련 산업의 성장도 기대된다.

특히 LG AI 연구원이 계획하고 있는 오픈소스 공개는 국내 AI 스타트업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초 모델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성능 오픈소스 모델이 제공된다면 더 창의적이고 특화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우려도 있다. 2000억 원이라는 투자 규모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규모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픈AI는 올해만 70억 달러(약 9조 원) 이상을 투자받았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도 AI 분야에 수십조 원을 투입하고 있다.

결론: 늦었지만 의미있는 출발

정부의 국가 AI 파운데이션 사업은 분명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업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선정된 5개 팀이 각자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전략을 추진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모든 팀이 똑같은 범용 AI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각각의 특화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AI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 5개 팀이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그리고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다면 한국의 디지털 주권 확보에 큰 기여를 할 것이고, 실패한다면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결과든 이번 사업은 한국 AI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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