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전 CEO이자 현재 AI 분야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인 에릭 슈미트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AI의 미래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통찰을 공유했다. 그는 헨리 키신저와 함께 공저한 『Genesis: AI and the Human Spirit』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계몽주의 이후 가장 큰 변화
슈미트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AI 혁명을 계몽주의에 비유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인간이 신에 대한 직접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이성적 사고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듯이, 지금은 인간보다 뛰어난 추론 능력을 가진 비인간 지능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ChatGPT 같은 챗봇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와 궁극적으로는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의 등장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정말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할 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 이것은 ChatGPT가 아니다. 그건 2년 전 이야기고, 모든 것이 다시 바뀌었다. 둘째, 당신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셋째, 좋든 나쁘든 이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컨센서스: 3년 내 세상이 바뀐다
슈미트가 새롭게 제시한 "샌프란시스코 컨센서스"라는 개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 AI 전문가들 사이에서 형성된 공통된 믿음으로, 향후 2-4년(평균 3년) 내에 전 세계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1단계: 언어 모델의 진화
현재의 LLM(Large Language Model)들이 더욱 발전하고, 추론 능력과 메모리 기능이 통합된다.
2단계: 에이전트 혁명
언어 + 메모리 + 추론이 결합된 AI 에이전트들이 복잡한 업무를 자동화한다. 슈미트는 집을 짓는 과정을 예로 들었다: 땅을 찾는 에이전트, 규정을 확인하는 에이전트, 설계하는 에이전트, 계약자를 선택하는 에이전트,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소송을 담당하는 에이전트까지. 이런 워크플로우는 모든 비즈니스, 정부, 인간 활동에 적용될 수 있다.
3단계: 추론 혁명
OpenAI의 O3 모델 같은 시스템들이 앞뒤로 사고하며 추론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다. 구글의 수학 모델은 이미 수학 대학원생의 90퍼센타일 수준에 도달했고, 다른 고등 학문 분야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재귀적 자기개선: 통제 불가능한 성장의 시작
가장 중요하고도 우려스러운 단계는 "재귀적 자기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이다. 시스템이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는 단계다. 이는 조합론적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인간은 조합론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슈미트는 이미 이런 재귀적 학습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올해 말까지는 사용자가 사용하면서 동시에 학습하는 시스템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것이 현재 보고 있는 엄청난 하드웨어 투자가 합리적인 이유다. 추론 모델들은 구글 검색보다 수천 배 더 많은 전력과 연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AGI에서 초지능까지: 인류의 새로운 도전
AGI와 초지능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AGI는 "일반적으로 지능적"이라는 의미로, 아침에 일어나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원하는 것을 학습하고 추구하는 전략적 지능을 의미한다. 슈미트는 이것이 4-6년 내에 달성될 것으로 본다.
초지능은 그 다음 단계로, 시스템이 모든 인간의 합보다 더 똑똑해지는 상태다. 초지능의 테스트는 간단하다: 우리가 참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증명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인간이 합쳐져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이 참이라는 것은 알 수 있는 증명 말이다.
헨리 키신저는 이를 "마법"이라고 불렀고, 사람들이 이를 목격했을 때 너무 무서워서 무력으로 대항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슈미트는 이것이 10년 내에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네트워크 효과와 국가 간 경쟁의 새로운 차원
AI 발전이 네트워크 효과 비즈니스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앞서게 되면,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스타트업이 1,000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AI 연구자들을 컴퓨터로 대체하기로 결정한다면? 전력만 있으면 되니까 100만 명의 AI 연구자를 둘 수 있다. 이들은 피자를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는다. 그러면 혁신의 기울기가 급격히 상승한다.
네트워크 효과 비즈니스에서 이런 상황은 상대방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만들 수 있고, 그때 선제공격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는 국가 안보, 정치, 민주주의 등 인간 경험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슈미트는 "민주주의가 AGI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는 정부 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CAPEX가 새로운 해자: 컴퓨팅 파워의 중요성
최근 OpenAI에서 Meta로 이직한 슈퍼인텔리전스 팀에 대한 1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보면, 인재 vs 컴퓨팅 파워 중 무엇이 더 중요한 해자인지 의문이 든다. 200억 달러의 컴퓨팅 투자에 비하면 1억 달러는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업계 임원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현재는 과잉 투자 시기이고, 2-3년 후에는 과잉 공급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괜찮을 것이고 다른 회사들이 돈을 잃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는 전형적인 버블의 특징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컨센서스를 믿는다면, 추론이 강화학습 체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것이 인류의 정의적 측면이 될 것이라면, 현재 투자는 오히려 과소평가되었을 수 있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슈미트의 경험상 하드웨어 용량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활용되지 않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과거 "그로브가 주고 게이츠가 가져간다"는 말처럼, 인텔 칩이 빨라져도 컴퓨터가 빨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추가 기능을 계속 넣었기 때문이다.
스케일 프리 영역: 수학과 소프트웨어의 무한 확장
이런 시스템들이 어떻게 확장될 것인가? 핵심은 "스케일 프리(Scale Free)" 영역이다.
수학이 대표적인 예다. 수학자들은 칠판 앞에서 하루 종일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수학의 아름다움이다. Lean이라는 증명 교환 프로토콜을 사용하면, 한 시스템이 추측을 생성하고 다른 시스템이 이를 증명하는 스케일 프리 솔루션이 가능하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래머들이 작성하는 코드는 서로 매우 비슷하다. Cursor 같은 도구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유다.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원하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컴퓨터가 코드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언어 설계와 컴퓨터 OS 아키텍처로 박사학위를 받은 슈미트로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생전에 파괴되는 것을 보는 것이 다소 우려스럽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사이버 보안과 쌍을 이룬다. 소프트웨어를 생성할 수 있다면 그 소프트웨어에 대한 공격도 생성할 수 있다. 버퍼 오버플로우 등을 찾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공격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데이터가 필요한 분야들이 따라올 것이다.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은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없지만 곧 확보될 것이다. 이것이 기후 변화 해결, 의학의 혁신적 발전 등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실리콘이 전략이다: 글로벌 AI 파워 다이내믹스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중국의 접근 방식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엄청난 자본으로 인해 기업들이 오픈소스보다는 강력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반면 중국은 DeepSeek 등을 통해 오픈소스, 오픈 웨이트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오픈소스 모델이 더 많은 채택을 받게 될 것이고, 특히 서구가 진출하지 않는 수많은 국가들에서 그럴 것이다. 결국 미국과 서구가 기술적으로 앞서더라도, 실제 AI 사용의 대부분은 미국-서구 모델이 아닌 오픈소스 중국 모델에서 일어날 수 있다.
모바일 시대의 교훈: 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구글 CEO 시절을 돌이켜보며 슈미트는 모든 실수가 근본적으로 "시간"의 문제였다고 고백했다. 구글이 90% 시장점유율로 성공했지만,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고 논리적 극한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Uber가 GPS와 결합해서 만들어낸 것, WhatsApp이 전화번호를 세계적인 고유 식별자로 만든 것 등을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전화번호가 실제 고유 아이디가 될 것이라는 것은 지금은 명백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조언은 명확하다: "지금 하고, 매우 빠르게 움직여라. 이 시장에는 너무 많은 플레이어가 있고 너무 많은 돈이 걸려 있어서, 놀라운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 뒤처질 것이다."
마무리하며: 준비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에릭 슈미트의 통찰은 우리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곡점 중 하나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컨센서스가 맞든 틀리든, 그가 제시하는 6년이라는 시간표가 정확하든 아니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속도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를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이 변화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 특히 AGI와 초지능이 가져올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깊은 고민과 대비가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슈미트의 경고는 명확하다: "당신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