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실리콘밸리의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가 미국 정부의 핵심 소프트웨어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의 오랜 동맹인 피터 틸이 공동 창립한 이 회사는 기존 컨설팅 대기업들이 대규모 계약 해지를 당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승승장구하며, 이제는 그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정부 계약의 대변혁, 팔란티어가 최대 수혜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팰런티어는 올해 초부터 연방정부로부터 1억 1,3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따냈다. 더 놀라운 것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미국 정부 수익이 3억 7,000만 달러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회사의 최근 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확인된 수치다.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들과 기술 리더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팰런티어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샴 산카르도 언급했다. "우리는 팰런티어로부터 많은 것들을 구매하고 있다"며 "우리가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있나?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대변인 테일러 로저스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인들이 힘들게 번 세금을 쓸 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각 기관들이 오랜 혁신 역사와 결과, 그리고 정부 효율성 증대로 유명한 최고 수준의 미국 기업인 팰런티어와 파트너십을 맺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존 대기업들의 몰락과 팔란티어의 기회
흥미로운 점은 팰런티어가 기존 계약업체들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부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팰런티어를 새로운 중심적 역할에 놓이게 했다.
올해 4월,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액센츄어, 부즈 앨런, 딜로이트 등과의 IT 컨설팅 계약에서 51억 달러를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헤그세스는 메모에서 "이러한 계약들은 우리 국방부 인력이 기존 자원을 활용해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3자 컨설턴트에게 맡기는 비필수적 지출"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팰런티어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계약이 해지된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그들에게는 생명줄을, 자신에게는 더 큰 권력을 안겨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영향력 확장
팰런티어의 파트너십 전략은 매우 정교하다. 액센츄어와의 파트너십에서는 최소 1,000명의 액센츄어 직원을 팰런티어의 파운드리(Foundry)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에 대해 교육하고 인증할 예정이다. 두 회사는 함께 정부 기관 예산에 대한 "360도 뷰"를 만들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소위 정부효율성부(DOGE)가 연방 지출을 검토하기 위해 구축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정부 조달법 부학장인 제시카 틸립만은 "이는 팰런티어와 전통적이고 레거시 지향적인 국방 또는 정부 계약업체 양쪽 모두에게 꽤 영리한 비즈니스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그들이 특정 영역에서는 새롭고 다른 업체들이 그런 기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팰런티어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딜로이트와의 파트너십에서는 조직 전반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엔터프라이즈 운영 시스템(EOS)"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국세청(IRS)과 사회보장청(SSA) 같은 정부 기관에서 팰런티어는 이미 기관 데이터셋을 결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던 데이터셋들이 서로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점에 대한 우려와 비판
하지만 이런 급속한 성장과 영향력 확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팰런티어의 전 직원이자 현재 회사 비판자인 후안 세바스티안 핀토는 "한 회사가 독점하고 정부 소프트웨어의 게이트키퍼가 되어, 정부를 위한 '앱 팩토리'가 되는 것, 모든 기관에 있고 국방 복합체와 정보 복합체의 일부가 되는 것은 공정성과 경쟁에 관해 큰 우려를 가져다주며, 팰런티어를 아마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매우 독특한 위치에 놓는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팰런티어의 정부 내 영향력은 상당하다. 4월에는 WIRED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팰런티어는 IRS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관 전체의 모든 데이터를 통합하는 "메가 API"를 구축하고 있다. 이 API가 완성되면 "모든 IRS 시스템의 읽기 센터"가 될 수 있다. 또한 출입국관리소(ICE)로부터는 자진 출국 추적을 위해 3,000만 달러 계약을, 국방부로부터는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 프로그램 확장을 위해 7억 9,500만 달러 계약을 따냈다.
데이터 통합의 양날의 검
팰런티어의 핵심 기술은 데이터 통합과 분석이다. 이는 정부 효율성 측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이전에는 각 기관이 서로 다른 시스템을 사용해 데이터 공유가 어려웠지만, 팰런티어의 플랫폼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한 회사가 정부의 거의 모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팰런티어가 정보기관과 국방부뿐만 아니라 국세청, 사회보장청 같은 민간인 대상 기관에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 관점에서 본 함의
컴퓨터 과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팰런티어의 성공은 기술적 우수성보다는 정치적 연결과 타이밍의 결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 계약에서 이 정도의 독점적 지위를 얻는 것은 순수한 기술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 IT 시스템의 단일화가 가져올 수 있는 보안 위험이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격이 될 수 있다. 만약 팰런티어 시스템에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거나 해킹당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정부 전체에 미칠 수 있다.
또한 벤더 락인(vendor lock-in) 문제도 심각하다. 정부가 팰런티어 플랫폼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나중에 다른 솔루션으로 전환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정부의 기술 자주권을 해칠 수 있다.
미래 전망과 시사점
팰런티어의 현재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여러 위험 요소가 있다. 첫째, 정치적 변화에 따른 리스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 독점에 대한 규제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셋째, 경쟁사들의 반격도 예상된다.
하지만 팰런티어가 구축한 생태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정부의 핵심 시스템에 깊숙이 들어가 있고, 기존 대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액센츄어, 딜로이트, 부즈 앨런 같은 기업들이 팰런티어 없이는 정부 계약을 따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이들은 팰런티어의 든든한 영업 파트너가 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지만, 동시에 한 회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정부 IT 정책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팰런티어의 부상은 단순한 기업 성공 스토리를 넘어서 정부와 기술 기업 간의 관계, 데이터 거버넌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력 집중 문제를 제기한다. 효율성과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경쟁과 견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팰런티어의 성공이 미국 정부의 디지털 전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기술 독점을 만들어낼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