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AI 도입의 현실적 장벽
최근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면서 마주하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보안 문제다. 많은 직장인들이 개인적으로는 ChatGPT, Claude 같은 AI 도구들을 활용해 놀라운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고 있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보안 정책 때문에 이런 도구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업마다, 심지어 같은 회사 내에서도 부서마다 AI 활용 정책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가 보안시설로 지정된 회사들은 Meta와 협업해 Llama 같은 언어모델을 로컬 환경에 구축해 사용하고 있고,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로컬 LLM을 다운받아 챗봇을 구축하거나 AI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반면 HR 부서에서 리더십 코칭용 AI 챗봇처럼 보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영역에서는 외부 API를 연결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A씨의 딜레마 - 현실적 사례
실제로 만난 한 직장인의 사례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직장인은 ChatGPT 유료 버전부터 시작해 Claude, Gemini 등 여러 AI 도구들을 개인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 팀장이 급하게 리서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집에서 AI를 활용해 빠르게 고품질의 보고서를 완성했다. 팀장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고, 이후 비슷한 업무가 계속 주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회사 업무를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보안상의 부담감. 둘째, 회사 일을 하는데 개인 돈을 써야 한다는 부당함. 결국 그는 AI 사용을 중단했지만, 이번에는 팀장이 불만을 표했다. "왜 예전처럼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딜레마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AI를 당연하게 사용하며 공부하고 있다. 이들이 내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AI가 없으면 일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AI는 애플리케이션을 대체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인사이트가 나온다. AI는 단일한 기능을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절대 대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AI 도구가 나와도 MS PowerPoint나 Word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대신 AI는애플리케이션과 애플리케이션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MS Word와 Teams 사이, Teams와 회사 공지사항 시스템 사이, ERP 시스템과 다른 업무 시스템 사이에는 연결의 공백이 존재한다. AI는 바로 이런 공백을 메우면서 시스템 간의 연결성을 제공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인 차원에서는 업무를 분해해서 AI를 활용해야 하고, 기업 차원에서는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 관점에서 시스템 간 공백을 찾아 AI를 투입해야 한다.
인텔리전트 워크플로우의 등장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AI로 연결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바로인텔리전트 워크플로우가 가능해진다. 지금까지는 회사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의 시스템에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각 부서별로 따로따로 관리되던 정보들이 AI의 도움으로 연결되면서, 마치 사람 몸의 혈관처럼 회사 전체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재미있는 답변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영자 입장에서 회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재고관리, 물류, 생산, 인사를 따로따로 봤다면,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AI의 도움으로 통합적인 경영 관리가 가능해진다.
에이전트 AI의 실제 활용 사례
실제로 Claude를 활용한 복잡한 업무 처리 사례를 보면 에이전트 AI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철강 생산 관련 협력업체를 찾는데, ISO 품질 인증을 받고, 매출 15억 이상이며, 한국 기업과 거래 경험이 있고, 경영진의 부정적 이슈가 없는 기업"이라는 복잡한 조건을 제시했을 때, AI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작업을 수행했다:
1. 동남아시아 철강 생산 협력업체 검색
2. 제조업체 추가 검색 및 점검
3. 매출 15억 이상 조건 확인
4. 한국 기업과의 거래 이력 크로스체크
5. 실적 재확인
6. 뉴스 사이트에서 부정적 이슈 검색
7. 종합 분석 후 업체 리스트 제공
8. 대시보드 형태로 시각화
9. 강점과 약점 분석까지 추가 제공
이런 작업을 사람이 한다면 며칠이 걸릴 일을 AI는 몇 분 만에 처리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기능이 오픈소스로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이런 소스를 다운받아 자사의 레거시 시스템과 연동시킬 수 있다.
기업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의 변화
이런 변화는 기업의 애플리케이션 관리 개념도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독립적인 애플리케이션들이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회사에서 도입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얼마나 많은 API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가 되었다.
100% 클라우드 서비스로 운영되는 회사를 생각해보자. Office 365, Workday, Salesforce, 각종 SaaS 서비스들이 모두 API를 제공한다면, 이들을 연결해서 인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기존의 온프레미스 시스템들은 API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개발팀이 새로 API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동반 성장
개인 차원에서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업무의 전후좌우를 이해해야 한다. 업무의 맥락을 파악하고, 어떤 부분을 혁신해야 할지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생존한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애플리케이션 사이사이의 링키지 역할을 AI가 담당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거의 100년 동안 위계구조에서 자신이 맡은 업무 중심으로만 발전해왔다. 직급이 올라가야 넓게 본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일해왔기 때문에 AI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제는 파편적인 업무가 아닌 입체적인 업무 이해가 필요하다.
산업화에서 AI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
흥미롭게도 이런 변화는 역사적 패턴과 일치한다. 과거 된장을 만들 때는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산업화되면서 분업화가 진행되어 누구는 매주만 쓰고, 누구는 된장만 만드는 식으로 파편화되었다. 이제 AI를 만나면서 다시 한 사람이 전체 과정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AI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전체를 바라본다. "이 업무 전체를 내가 할 수 있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더 포괄적이고 전후좌우의 업무 맥락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기업 보안 딜레마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개인은 업무의 맥락을 이해하고 AI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기업은 시스템 간 연결성을 높여 인텔리전트 워크플로우를 구축해야 한다.
미래는 항상 우리 눈앞에 있다. 미래가 무엇인지 몰라서 준비 못하는 경우는 없다. 지금 당장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들이 바로 미래의 모습이며, 이에 맞춰 개인과 기업 모두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