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혁명의 양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의사가 인간보다 4배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는 놀라운 성과가 발표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탠포드, 버클리 같은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50% 이하로 급락하는 충격적인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AI 의사 'MAIDX'의 혁신적 접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6월 발표한 MAIDX(AI Doctor)는 기존 AI 의료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오케스트레이션 에이전트'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마치 실제 병원에서 여러 전문의가 협진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한 에이전트는 환자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른 에이전트는 가설을 세우며, 또 다른 에이전트는 필요한 검사를 선별하고, 마지막 에이전트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한다. 이들이 서로 토론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최종 진단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기술적으로는 '체인 오브 디베이트(Chain of Debate)' 기법을 활용했다. 기존의 '체인 오브 쏘트(Chain of Thought)'가 하나의 AI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추론하는 방식이었다면, 체인 오브 디베이트는 여러 AI가 마치 전문가 패널처럼 토론하며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벤치마크 결과는 놀라웠다. 의학 논문에 실린 매우 어려운 케이스 300개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일반 의사들은 20% 정도의 정확도를 보인 반면, MAIDX는 80%의 정확도를 달성했다. 4배의 성능 향상이다.
의료 AI 분야의 치열한 경쟁
마이크로소프트만이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구글 딥마인드는 이미 2024년 초 AIM이라는 의료 AI를 발표했고, 환자와 직접 멀티턴 대화를 통해 진단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방식이다.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 의료 분야에 이렇게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기술이 범용 인프라에서 특정 산업으로 진화할 때, 가장 큰 시장이 바로 헬스케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불로장생' 욕망도 한몫한다. 자신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하니 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투자회사들이 바이오헬스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누니(Noom) 같은 회사도 AI 모델을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로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컴공과 졸업생들의 충격적인 현실
하지만 이런 AI의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축복은 아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 스탠포드, 버클리 같은 최고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과거에는 이런 명문대 졸업생들에게 기업들이 먼저 찾아와 "우리 회사에 와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었다. 오퍼율(offer rate)이 200-300%에 달했다. 즉, 졸업생 한 명당 2-3개의 잡오퍼를 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절반도 취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코딩 AI의 급속한 발전이 있다. AI가 기본적인 코딩 업무를 너무 잘 처리하다 보니, 기업들이 신입 개발자를 채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10배씩 향상되니, 굳이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채용 요청이 들어오면 "AI로 못할 이유를 적어서 내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AI로 대체 가능한 업무라면 채용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기존 직원들도 "이렇게 많은 인력이 필요 없는 것 같다"며 해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메타의 급진적 인재 영입과 업계 지각변동
이런 상황에서 메타(Meta)의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메타는 최근 AI 인재들에게 수천억 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공격적인 영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오픈AI에서 많은 인재들을 빼내오고 있다.
메타의 이런 전략 변화에는 깊은 배경이 있다. 2013년부터 페이스북 AI 리서치(FAIR)를 운영하며 구글과 함께 AI 연구를 양분해왔던 메타였지만, ChatGPT 등장 이후 대형언어모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라마(Llama) 모델로 따라잡으려 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결국 메타는 기존 팀을 사실상 해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슈퍼팀'을 별도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12년간 쌓아온 조직을 과감히 리빌딩하는 것이다. 기존 직원들은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거나 다른 업무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메타의 공격적 영입은 오픈AI에게는 큰 위기다. 비영리기관 성격상 메타만큼 높은 연봉을 제시하기 어려운 오픈AI는 핵심 인재들을 계속 잃고 있다. 샘 알트만이 GPT-5를 예고했지만, 다른 빅테크들도 비슷한 수준의 모델을 동시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어 특별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AGI로 가는 길: 에이전트 협업의 시대
이런 변화 속에서 AI 발전의 방향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 단일한 거대 모델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접근보다는, 여러 전문 에이전트들이 협업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문명의 발전 과정을 보면, 한 개인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전문가들이 소통하고 협력하며 발전해왔다. AI도 마찬가지로 시간축(깊이 있는 추론)과 공간축(다양한 전문성)을 결합한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주식 투자 AI를 만든다면 종목 분석 전문가, 시장 경제 전문가, 산업 전문가, 투자 전략 전문가, 기술적 분석 전문가 등이 각각의 역할을 하고, 이들이 토론하고 협력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여기에 개인의 투자 성향(안정지향, 모멘텀 트레이딩, 가치투자, 스윙투자 등)까지 고려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이런 접근법은 인간의 뇌 구조와도 유사하다. 뉴런들이 집합을 이루고, 각 영역마다 고유한 기능이 있으며, 이들이 연결되어 전체적인 지능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결론: AI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고 있고, 동시에 전통적인 IT 일자리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AI, 그리고 여러 AI 에이전트들 간의 협업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가 담당하고,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대기업에 들어가서 트레이닝을 받으며 성장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냉정한 현실이 보여주듯, AI 시대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대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